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톤 브루크너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[[바그너]]의 음악에 경도되었다는 점, 그리고 [[브람스]] 추종파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는 점에서 브람스와 사이가 나빴을 것 같기도 하지만, 브루크너와 브람스는 개인적으로는 친분이 있었고 어느 정도 서로 존중하는 사이였다고 한다. 음악적 지향점은 다를지언정 음식 취향 등이 맞았고 [[빈(오스트리아)|빈]] 시민으로서의 접점이 있었기 때문이다. 브람스는 1896년 브루크너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"다음은 내 차례가 되겠지"하고 침울하게 말했다고 한다.[* 브람스는 반년 뒤 사망하였다.] * 일본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독일이 동서로 분열되었을 적에는 노바크판은 [[빈(오스트리아)|빈]], 하스판은 [[라이프치히]]에서 출판되었기 때문에 독일 통일 전까지 서구권에서는 하스판을 입수할 수 없었고, 동구권에서는 노바크판을 입수할 수 없었다고 한다. 이 때문인지 서구권에서는 노바크판을, 동구권에서는 하스판을 애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. [[분류:오스트리아의 작곡가]][[분류:오스트리아의 오르가니스트]][[분류:1824년 출생]][[분류:1896년 사망]][[분류:화폐의 인물]][[분류:후기 낭만주의의 작곡가]][[분류:오스트리아의 가톨릭 신자]][[분류:오버외스터라이히 주 출신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